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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장서가 위력(韦力)은 천일각에 직접 가시고 시 흔적 탐방 체험을 나눔
정보 출처:天一阁博物馆 발표 날짜:2017-11-06 
가게:[크다 작은] 색상 조정:

11월5일에 저명한 장서가 위력 선생님은 중국 현존 가장 오래된 개인 장서각 천일각에 직접적으로 오시고 그의 신작 《멱시기(觅诗记)》를 가져 많은 독자 친구들과 함께 그의 시 흔적 탐방 체험을 나누었다.위력 선생님은 고서를 삼십여 년 동안 연구하고 개인 장서가 당세에 견줄 자가 없다.고서 버전을 관심하고 장고를 숨어 있는 밖에 중국 고대 장서가 유적의 고찰과 연구에 힘쓰고 고서 십만 권을 수집하고 4편이 모두 구비되며 중국 민간 고대 선본을 가장 많이 소장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장서각 “지란재(芷兰斋)”를 가지고 있다.개인의 힘에 의지하고 《고서지애(古书之爱)》,《고서 수장(古书收藏)》,《지란재서발집(芷兰斋书跋集)》,《경거집(琼琚集)》,《주흔탐려(硃痕探骊)》,《로신장서지(鲁迅藏书志)》,《득서기(得书记)》,《실서기(失书记)》,《멱종기(觅宗记)》등을 저작했다.

신작《멱시기》를 쓰기 위해 위력 선생님은 항상 한 사람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묘에 들어갔다.역사 유적을 탐방해서 위력이 옛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시공을 초월하고 그로 하여금 역사의 변천이 간단한 하나의 점으로 구성되지 않는 것을 의식했다.그래서 그는 탐방을 역대 현인에 대한 경의로 간주하고 이런 경의를 표하는 것은 민족 문화에 대한 인정을 대표한다.

탐방 과정 중에서 위력은 역사 유적의 보호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하는 것을 깊이 살폈다.다년간의 탐방 여행은 유감스러운 여행이고 잃어버린 여행이다.많은  중요한 문화 명인의 유적이 이미 잠적했다.“《멱시기》의 시인의 여행과 같이 ‘건안 3조(建安三曹)’는 조조(曹操),조식(曹植)의 유적을 찾았는데 조비(曹丕)와 관련된 것이 여전히 찾지 못했다.”그는 장강 남북의 모든 고서 중에서 기재된 서각을 두루 다니고 결국은 그에게 상실감을 느낄 수 있고 대략 반의 서각은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없어지고 남은 상황도 심상치 않다.건가(乾嘉) 시기 최대의 장서가 황비열(黄丕烈)의 서각은 쑤저우(苏州) 실크 공장 내에 구획되고 있다.오흥(吴兴) 4대 장서각의 하나로 된 밀운루(密韵楼)는 미용실로 변했다.또는 많은 서각은 기관 사무실이 되었다.당연히 그는 힘이 없이 전체 사회의 변혁을 저지하고 이런 고적이 사라지기 전에 찾을 수 있고 펜과 카메라로 이전의 역사 진실을 기록하기를 바랄 뿐이다.《멱시기》는 지도 한장을 동봉하고 위에서 119명 역대 시인의 고향,공원묘지,사당,유적을 빽빽하게 써 있다. 이런 것은 위력이 다년간 탐방하는 곳이며 여정은 14개 성,1개 직할시에 퍼져 있다.그는 비록 많은 시인의 유적이 탐방되지 못하지만 이 책이 자신 한 사람 눈 중의 시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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